[인간극장]
신년특집
그대 행복을 주는 사람
찌아찌아의
한글 선생님
정덕영 씨
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
인간극장 4718회 미리보기
신년특집 <그대, 행복을 주는 사람>
제2편 - 찌아찌아의 한글 선생님
인간극장 <신년특집 - 그대, 행복을 주는 사람>
에서 만난 두 번째 주인공은
문자가 없는 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에게
10년 째 한글을 가르치고 있는 정덕영 씨다.
10년 전, 문자가 없는 찌아찌아족에게 한글을
전파한다는 뉴스로 세간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행정과 재정적인 문제로 1년 만에 철수.
모두가 사라진 자리를 홀로 지킨 정덕영 씨(58).
찌아찌아족 아이들은 여전히 한글을 배우고 있고
마을 거리엔 한글 간판이 생겨나고 있다
모두 한글 선생님 덕영 씨 덕분이다.
매년 400여 명의 제자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덕영 씨. 홀로 다시 돌아온 이유는 다름 아닌
아이들과의 약속 때문이었다. 찌아찌아
아이들에게 희망을 심어놓고 무책임하게
떠날 수는 없었다. 문자가 없던 찌아찌아족이
전통문화와 언어를 문자화함으로써
부족을 지키고 문화를 보존시킬 수 있길 바랐다.
하지만 위기도 많았다. 말라리아에 걸려 생사의
고비를 넘기고 비자나 행정적인 절차, 부족한
재정은 늘 덕영 씨를 괴롭혔다. 가족과 떨어져
혼자 있는 외로움과 원활치 못한 언어소통
입에 맞지 않는 음식, 더운 날씨 등 매일이
전쟁 같았다. 그럼에도 덕영 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10년간 버틸 수 있었던 힘은 아이들이었다.
덕영 씨는 아이들의 똘망똘망한 눈망울과
열심히 배우고자 하는 의지를 보며 희망을 얻었다.
또 다른 힘이 되어준 건 첫 제자들이었다.
어느새 동료가 되어, 같은 한글 선생님이 된 제자들.
덕영 씨의 뒤를 이어 한글을 전파 중이다.
덕영 씨의 꿈은 찌아찌아 아이들이
한글을 배움으로써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는 것. 아이들이 자신의 꿈이 된
덕영 씨는 찌아찌아의 한글 선생님이다.
# 찌아찌아족, 한글을 만나다
10년 전, 문자가 없는 찌아찌아족에게 한글을
전파한다는 소식으로 떠들썩했다. 찌아찌아족은
고유한 언어는 있지만, 문자는 없었던
인도네시아의 소수 부족. 한글은 찌아찌아어의
음절과 문장구조에 가장 잘 맞았다. 또한,
쉽게 배울 수 있었고 찌아찌아족에게 유용했다.
하지만 이 사업은 순탄하지 못했고 1년 만에
철수, 흐지부지 사라져 버렸다. 그때 파견된
정덕영 씨(58)도 한국에 들어와야 했다.
하지만, 덕영 씨는 기어이 찌아찌아 아이들
곁으로 돌아왔다. 발로 뛰어 후원을 부탁하고,
직접 단체를 설립했다. 세간의 관심과 지원이
한바탕 폭풍처럼 지나간 자리. 그는 그렇게
10년간 찌아찌아족의 곁을 지켰다. 현재
찌아찌아족 아이들은 여전히 한글을 배우고
있고 마을의 거리에는 한글 간판이 하나, 둘
생기고 있다. 모두 찌아찌아의 한글 선생님
덕영 씨 덕분이다.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을 때, 덕영 씨는 눈을
감으면 아이들의 똘망한 눈망울과 해맑은
미소가 아른거렸다. 모두가 돌아갈 때도
덕영 씨는 아이들 생각에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이들과 한 수많은 약속을 어떻게
손바닥 뒤집듯이 뒤집을 수가 있겠어요.”
# 평범한 제약회사 직원, 한글 선생님이 되다
한글 교사가 되기 전, 덕영 씨는 20년간 평범한
제약회사 직원이었다. 다만 특별한 점은
국어사전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며 국어를
사랑했다는 점이다. 은퇴한 후,
결혼 이민자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던 중
찌아찌아족의 한글 교사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본 덕영 씨. 1남 1녀의 아버지이자 가장인
덕영 씨. 처음 한국을 떠나 올 때
아내 조순옥 씨와 당시 사춘기였던 자녀들도
덕영 씨를 이해하고 응원해주었다. 찌아찌아족의
한글 교육은 가족의 든든한 지원과
이해심 덕분에 가능할 수 있었다.
하지만, 10년간 위기도 많았다. 말라리아에 걸려
죽음의 위기를 넘기도 했고 비자나 행정적인
절차, 부족한 재정은 늘 덕영 씨를 괴롭혔다.
“깜깜한 동굴 속에서 불빛 없이
손으로 더듬어 길을 찾는 것 같았어요”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 있다는 외로움과 원활하지
못했던 언어소통, 입에 맞지 않는 음식,
더운 날씨. 매일 전쟁과도 같은 나날이었다.
그러나 덕영 씨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 찌아찌아족과 함께한 10년
한류열풍까지 가담해 한국과 한글에 관심이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인도네시아 전통
축제 ‘간데간데아’ 축제에 나타난 덕영 씨.
‘사랑해요’ 하며 손가락 하트를 날리는
마을 주민들. 덕영 씨는 밀려오는 사진 요청에
바쁘다. 한국어를 가르쳐달라는 아이들에
길거리에서 수업을 열기도 한다.
여기서 만큼은 BTS 부럽지 않다.
일주일에 한 번, 부톤섬에 있는 세곳의
초등학교에서 한글을 가르치는 덕영 씨.
교실에서는 ‘아야어여오요’를 열심히 읽고 있는
아이들의 소리가 울려 퍼진다. 수업이
끝난 후에는 피리 부는 사나이가 되는 덕영 씨.
밤톨 같은 아이들이 졸졸 따라다녀서이다.
한글 공부에 이렇게 열심인 아이들을 보면
언젠간 이곳에서 누구나 한글을 읽고
쓸 수 있을 날이 올 거란 희망이 보인다.
10년간 4천여 명의 제자들이 생겼다. 덕영 씨의
제자들이 한글 거리 ‘깜풍 코리아’를 만들었고
요즘은 관광명소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한글과
한국어를 가르쳐달라는 요청이 많아 고민이라는
덕영 씨. 저 멀리 라살리무 발리무 마을까지
부름을 받고 가기도 한다. 10년의 결실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는 요즘 요청은 많은데
인력과 재정이 부족한 것이 걱정이다.
인도네시아에서 문자가 없는 부족은 전통문화와
언어를 지키기 쉽지 않은 현실. 덕영 씨는
찌아찌아족이 한글을 통해 그들의 고유한
문화와 언어를 문자화하여 부족을 지키고,
문화를 보존시킬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 제2의 고향 찌아찌아, 덕영 씨의 꿈
10년간의 가장 큰 결실은 제자들이다.
그중에는 한글 선생님이 되어
어엿한 동료로서 활동하고 있는 제자들도 있다.
현지 교사가 현지인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하는 덕영 씨.
자신의 뒤를 잇는 제자들을 보면 곳간에
곡식을 가득 채운 부자가 된 것처럼 배부르다.
방학을 맞아서 한국을 찾은 덕영 씨.
그리웠던 가족들과 애틋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잠시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고 다시 부톤섬으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10년의 세월을
찌아찌아족과 보내고 나니 부톤섬이
제2의 고향인 것 같다는 덕영 씨.
“제 꿈은 찌아찌아 아이들이 한글을 통해서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는 거예요”
어느새 아이들이 자신의 꿈이 된 덕영 씨는
찌아찌아의 한글 선생님이다.
1부 줄거리 (2020/1/6)
인도네시아 부톤섬, 정덕영 씨는 문자가 없는
찌아찌아족에게 10년째 한글을 가르치고 있다.
가족과 떨어진지도 10년째, 물은 멀리서
사와야 하고 전기도 자주 끊기는 환경.
거기다 늘지 않는 요리실력까지,
비빔국수 하나 만드는데도 진땀을 뺀다.
그러던 어느 날, 한글 수업을 위해
초등학교를 찾아간 덕영 씨.
이상하게 오늘따라 학교가 조용하다.
방송일시 : 2020년 1월 6일(월) ~ 1월 10일(금)
채 널 : KBS 1TV 07:50 ~ 08:25
프로듀서 : 정현덕
제 작 : 타임프로덕션(02-761-6921)
연출 : 지현호 / 촬영: 이용택 / 글․구성 : 홍현영
보도자료 문의 : 임은민 취재작가
[출처] 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