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밥상 621회 미리보기

 

그해 여름, 추억은 맛있었네

 

돌돌 말린 멍석 텃마당에 깔아 놓고

쑥향 번지는 모깃불 피어오르면

우물 속의 수박 한 덩이 나누어 먹던

그때는 무수한 별들도 우물 속에 잠겨 있었다

- 노태웅의 시 <여름밤의 추억> 중에서

 

지나간 것들은 왜 모두 그리워지는 걸까?

폭염과 폭우, 잠 못 드는 열대야까지,

여름은 사람살이가 쉽지 않은 계절이다.

하지만, 햇살 사이로 들려오던 매미소리,

뙤약볕을 피해 땀을 식혀주던 원두막에서

수박 서리를 하던 아이들

장마가 끝나고 나면 골목을 누비던 소독차,

한여름 아이스께끼 장수의 목소리까지

여름에만 느낄 수 있었던, 여름이라서

좋았던 추억들이 있다.

뜨거운 청춘의 한 시절처럼 그리움으로

남은 여름날의 추억을 만나본다.

 

그 여름의 바닷가, 추억은 계속된다

- 양양 낙산해수욕장 서퍼들의 이야기

 

■ 양양 소개된 곳

 

- 양양서핑학교

연락처 전화번호 010.5788.1824

서핑 강습 및 서프레스큐 (서프 구조대) 육성 문의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면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더위를 피해 산과 바다를 찾아 나선다.

1962년 문을 연 양양 낙산해수욕장은

동해안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던 대표 피서

명소로 낙산을 찾은 피서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지만, 2005년 대형 화재로 지역 상권이

무너지면서 옛 명성을 잃고 긴 침묵에 빠지고

말았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서핑 성지로

떠오르면서 낙산해수욕장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다시 늘고 있다. 13년 전 귀어한

이승대 씨와 김나리 씨 역시 서핑으로 만나

부부의 연을 맺고, 아예 눌러앉아 낙산 바다의

매력을 알리는 전도사로 살고 있다. 부부가

마음껏 바다를 누빌 수 있는 것도 다 마을 분들의

응원과 지지 덕분이었다는데. 여름이면

소 마구간까지도 민박을 줄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찾던 마을에 생기를 불어넣고,

베개 하나만 들고 해변가에 나가 파도 소리에

잠이 들던 마을 분들의 추억을 다시 돌려드리고

싶었다고. 여름 바다의 추억을 간직하고 사는

마을 사람들과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가는

양양 서퍼들의 여름을 함께 해본다.

 

 

 

 

우리들의 여름은 뜨거웠네

– 홍제동 개미마을 사람들 이야기

 

서울 한복판, 홍제동에는 세월이 비켜 간

마을이 있다. 아직도 집마다 연탄을 쌓아놓고,

비가 오고 나면 뿌연 연기를 내뿜는 소독차가

골목을 누빈다. 5, 60년대 판자촌이

다닥다닥 들어서며 ‘인디언 마을’로

불리었다가 1980년대 서울시와 토지 문제를

두고 협상하는 과정에서 ‘개미처럼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마을’이라는 의미로 불리게 된

개미마을. 이 동네에서만 열 번 넘게

이사 다녔다는 임용순, 김대식 부부. 직접

하수도를 묻고, 축대 쌓아서 일군 밭까지.

낡고 허름해도 부부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어 떠나기 쉽지 않단다.

권용원, 명정숙 부부는 빈손으로 서울에 올라와

가파른 산길을 부지런히 오르내리며 자식 둘을

키워냈다. 고향을 떠나 각지에서 모인

마을 사람들은 길도 수도도 없는 산자락에

터를 잡고, 서로 버팀목이 되어 고단한 날들을

견뎌냈다. 콩 한 쪽도 나눠 먹었던 지난 시절처럼

지금도 모이면 호박전 하나라도 나눠

먹는다는데. 잘 익은 호박에 깻잎, 부추,

고추를 넣어 부쳐낸 호박부추전, 열무김치에

시원하게 말아낸 열무국수 한 그릇,

은은한 연탄불에 구워낸 조기구이까지

지금은 웃으며 추억할 수 있는

개미마을 사람들의 여름날을 만나본다.

 

 

 

 

여름은 누룩을 띄우는 계절

- 술이 익으면 추억도 맛있게 익는다

 

고향에서 40년 넘게 농사짓고 살아 온

농부 서연철 씨. 장마 후, 불쑥 올라온 피와의

전쟁을 치르느라 쉴 틈이 없다. 여름볕에

곡식이며 열매가 익는 이맘때 농부가 제일

여유있는 때라는데. 멱 감고 미꾸라지 잡는

재미가 쏠쏠하다. 삼복에 띄운 누룩이 제일

좋다고 해 날이 뜨거워지면 어머니는 통밀을

챙겨 누룩을 빚으셨다. 서연철씨 부부는

어머니가 하시던 옛 방식 그대로 누룩을 띄워

술을 빚는데 동네에서 소문날 만큼 술맛이

좋은 이유도 바로 손맛 때문이라고! 통밀을

거칠게 갈아 발로 밟아 단단하게 뭉쳐낸 다음

누룩을 띄우고 햇볕에 바짝 말려두었다가

가루로 빻아서 술 담글 때 사용한다. 방학을

맞아 아들 서조환 씨와 손주도 합세해 술을

빚는다. 술 빚는 날이면 구수한 밥 냄새에

술밥 얻어먹으려고 뛰어왔던 기억이

아른거린다는 조환 씨. 고슬고슬하게 지어진

고두밥에 열심히 빻은 누룩을 넣고 잘 버무려

물을 부어주면 이제 술이 익기만 기다릴 차례다.

술이 익으면, 빨갛게 익기 시작한 고추를 따다

속을 채워 부쳐낸 고추전, 들기름에 고소하게

구워낸 두부구이에 김치를 곁들이면 이만한

안주가 없단다. 마당에 멍석을 깔고 둘러앉아

맛있는 안주에 술 한 잔 주고받으면

오랜 여름날의 추억들이 어제처럼 생생하다.

 

 

 

 

여름의 선물,

홍천 한울마을의 추억 만들기

 

홍천의 한울마을. 토박이 반, 외지인 반.

마을 사람들에게 꽃도 심고, 얼굴도 보고,

정도 나눌 수 있는 꽃밭은 특별한 만남의

장소가 되어주었다. 13년 전 귀촌한 안기숙 씨는

올해 이장이 된 초보 이장이다. 마을 사람들을

도와 생전 처음으로 옥수수 수확에 나선다.

옥수수 농사로 1년을 사는 농부들에게 여름은

잠시도 마음 놓을 수 없는 시간. 따는 시기를

놓치면 딱딱해지는 터라 비가 와도

쉴 새가 없단다. 옥수수밭 옆에 자리 잡은

원두막은 마을에 하나 남은 오래된 쉼터.

땀도 식힐 겸 원두에 모여 옥수수 쪄먹던

추억이 가득한데. 여름이면 칡잎을 따다가

옥수수를 갈아 만든 반죽을 올려 쪄먹던

칡잎옥수수반대기와 옥수수만큼 흔했던

감자로 만든 감자범벅은 쌀이 귀했던 시절

끼니를 대신했던 음식이었다. 개울에서

물놀이하며 잡았던 달팽이(다슬기)는 아욱 넣고

수제비 조금 떼어 넣어 칼칼하게 끓인

다슬기아욱국은 한울마을 사람들의 그리움이

담긴 추억의 맛이다. 힘들고 고단했던

그 여름날들이 그렇게 그리운 추억이 되어

선물처럼 밥상에 남아있다.

 

■ 기획 KBS/ 프로듀서 정기윤

■ 제작 KP 커뮤니케이션

/ 연출 남호우 / 작가 전선애

■ 방송일시 2023년 9월 7일

목요일 저녁 7시 40분–8시 30분

 

 

[출처]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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